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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2. 22世 〉70. <부정공>연주(淵周)配유인김해허씨효행비(孺人金海許氏孝行碑)
1. 문헌 목록 〉22. 22世 〉72. <부정공>연성(淵性)配 유인김해김씨묘표(孺人金海金氏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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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부정공>연필(淵弼)配 유인죽산박씨묘표(孺人竹山朴氏墓表)
(부정공후)22世연필(淵弼)配 유인죽산박씨묘표(孺人竹山朴氏墓表) 대범 孝道와 烈行은 사람마다 당연히 行해야 할 法則인데 다만 그 行한 자가 있다 없다 함으로 孝子烈女로 世上에 이름이 나타난 자 또한 있다 없다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은 古人所謂是皆天命之所爲요 非人毫髮勉強而能及者也若孺人者는 天性孝烈이 아니겠는가. 孺人은 竹山 朴允源之女로 玉川 趙淵弼之妻也. 高宗 壬寅(一九0二)년 八月 十八日에 出生하였는데 天品이 端淑하고 貞靜하며 自幼로 能知事親之道하여 昏定晨省하고 養志養體하며 紡績烹飪을 不敎自得하니 譽聲이 遠播하였다. 趙氏家로 출가하여 親家에서 父母 섬긴 道理로써 媤父母를 섬기고 愛養한 절차를 조금도 잃치 않으며 敬君子 睦宗族하고 謀忠救惶에 各盡其道하니 洋洋한 和氣가 家庭에 充滿하였다. 二十歲 壬戌(一九二二)년에 初產生男하니 上下稱慶하였으나 不過幾月하고 九月에 夫君이 嬰疾하여 病牀에 누었는데 百藥이 無效라. 孺人이 惶刼하여 百方으로 救醫治療했으나 天命이라 할 수 없이 十九日에 殒命하니 當時慘變을 어찌 形言하겠는가. 水醬을 不飲하고 從夫하기로 盟誓했으나 家人의 傍察이 甚함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에 幡然改悟하고 하는 말이 의지 없는 媤父母와 幼兒를 善養保育하는 것이 天命이니 順受天命이 可也라 하고 일어나서 일을 看檢하며 염습 빈장을 예에 따라 遺感없이 지내고 조금도 媤父母의 뜻을 어기지 않으며 自由로 일을 處理하지 않고 좋은 飲食을 먼저 입에 넣지 않고 恭遜하고 조심하여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다가 갑자(一九二四)년 동지섣달 두 달 사이에 媤父母가 天年으로 別世하시니 哀毀悲痛함이 夫君喪事 때보다 더하였다. 千辛萬苦 끝에 喪期를 마치고 黙黙이 생각하니 家岱田土가 별로 남은 것이 없는지라. 뼈를 깎는 아픔으로 勤勉하여 낮에는 농사일에 품을 팔고 밤에는 질삼일에 품을 들어 겨우 飲渴을 면하다가 어린 애가 점점 자라 生計를 보태니 家道가 좀 나아져 愛養한 孝道를 받다가 壬子(一九七二) 二月 一日에 卒하니 潭陽郡 南面 柯岩里 子坐原에 安葬하였다가 丁丑(一九九七) 三月 二十六日에 光州市 北區 靑豊洞 二七六番地 田艮坐原에 移葬하고 竪碣具床望石하다 男은 直洙요 孫은 松勲 承勲 公勲 道勲 良勲이며 餘는 繁不盡錄 슬프다 孺人의 氷月같은 烈行으로 治世의 旌褒를 받아야 마땅한데 다만 居鄉校官의 表彰狀을 받고 말았으니 慨歎할 일이다. 끊어진 孝烈을 잊고 어두운 것은 밝혔으니 이것을 어찌 강작하여 될 일이겠는가. 肖胤直洙가 先妣의 卓行이 泯沒될까 두려워하여 墓碣을 恳請하였다. 同宗의 誼로 固辭 못 하고 見聞한 바를 檃括하여 記錄함. 歲在 甲戌 三月 日 宗黨 趙炅勲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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